<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>라는 책을 읽고 김하나작가 글이 너무 좋아졌어요.
어렵지 않고 쉬우면서도 재미있고, 또 뭔가 엄청난 지식은 아니지만 갑자기 인생의 작은 깨달음도 준다고나 할까요.
그래서 김하나 작가님의 책을 몇권 더 찾아보았습니다.
<힘빼기의 기술>
<당신과 나의 아이디어>
<내가 정말 좋아하는 농담>
<15도>
그리고 다른사람들과 함께 쓴 여러가지 책까지. 책들이 꽤 많이 있었어요. 그리고 예스24에서 하는 팟캐스트도 하고 계신다는 것도 알았네요.
치열한 광고의 세계에서 오랜동안 카피라이터로 일하셔서 그런지 역시나 맛깔나게 잘 쓰시는 것 같아요.
저는 책을 주로 리디셀렉트에서 읽는지라, 일단 리디셀렉트에 있는 <힘뺴기의 기술>이라는 책을 먼저 읽어보았습니다.
표지에서부터 뭔가 유연함이 돋보이는 것 같지 않나요 ㅎㅎㅎ
1부와 2부로 나누어져 있는데 1부는 힘뺴기에 대한 내용, 그리고 2부는 남미여행에 대한 글로 구성되어 있어요.
개인적으로는 남미가 저의 취향이 아니어서 그런지 힘빼고 사는 것에 대한 글들이 더 재미있었지만, 김하나 작가의 여행이야기는 또다른 재미가 있었어요.
역시나 유쾌하고도 유쾌합니다. 재미있었어요.
36p
무슨 일이 생겨 이 친구들과 멀어지게 될지도 모르지. 하지만 우리에게 한 가지는 확실하다. 인생은 누군각와 조금씩 기대어 살 때 더 살 만해진다는 것.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.
81p
어찌 보면 사랑은 인생의 가장 큰 위로같다. 종교를 진지하게 믿기엔 과학 서적을 너무 많이 읽은 나는 사실 인간이라는 유기체가 세상에 나타난 데는 아무런 이유도 목적도 없다는 걸 알고 있다. 의미를 찾기엔 완벽하게 허무한 삶에서, 한 존재가 다른 수많은 존재 중에 하필 바로 그 단 한 사람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고 막연히나마 '아, 내가 이 사람을 만나려고 이 세상에 왔구나'하고 느끼게 되는 사건이라니, 대단한 위로가 아닐 수 없다. 종교가 주는 위로에 필적하는 위로다. 누가 종교에 대해 물어보면 나는 "전능한 신보다는 무능한 인간들 사이의 사랑을 더 믿어요"라고 대답하곤 한다.
128p
인생에서 우연이 얼마나 큰 힘을 갖는지를 깨달으려면, 지금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 세가지를 떠올리고, 그 셋이 어떻게 내 인생에 들어오게 되었는지를 거슬러 올라가보라고 했다.
131p
"2,30대에 철없는 짓, 멍청한 짓, 미친 짓 골고루 다 해봐야 비로소 40대에 반복한 때도 익숙해서 좋다."
40대, 명실공히 모두가 인생의 중반이라 일컫는 시기에 진입한다 해서 갑자기 철이 들고 인생의 해법을 깨닫게 되지는 않는다. 어렸을 때 너무나 중후하다고 생각했던 '40대'라는 나이에 스스로 도달하고 보니 생각처럼 그다지 어른이지가 않아서 나도 좀 당황스럽다. 흰머리도 몇 개 났는데 어째서 철없거나 멍청하거나 미친 짓을 또 하는거지? 그렇다면 인생은 반복이기만 한 걸까? 그건 또 아니다. 앞서 말한 문장에서 방점은 '익숙해서'에 있는지도 모른다.
250p
거대한 존재가 정원에 앉아 무릎위에 책을 올려놓고 있습니다. 적당히 나른한 오후입니다. 그런데 펼쳐놓은 책 위로 아주 조그만 개미가 꼬물꼬물 기어갑니다. 거대한 존재는, 꼭 그 개미를 죽여야겠다 말아야겠다는 의식도 없이 입으로 훅 불어버립니다. 개미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책 표면의 거스러미를 움켜쥐고 납작 붙어 위기를 넘깁니다. 거대한 존재는 두어번 불어보고는, 개미의 저항이 의외로 완고하므로 그냥 내버려둡니다. 어차피 개미 때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으니까요.
'뭣 때문에 그렇게 필사적으로 책 위를 기어가니?'
'네가 이 큰 글자를 읽을 줄이나 아니?'
개미는 몇번이나 책이라는 세상 밖으로 떨어질 뻔하지만 끝끝내 버텼습니다. 자기가 있는 곳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모른 채, 살아남았다고 생각하며 생에 감사합니다. 하지만 그 순간, 거대한 존재는 속이 더부룩하다거나 개미가 눈에 거슬린다는 이유로, 아니면 그저 재미로 그 거대한 손을 들어 개미를 가볍게 쓸어내버립니다. 개미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세상밖으로 날아갑니다. 책 위엔 흔적 하나 남지 않습니다. 엘찰텐에서 내가 느낀 건 이 이야기와 같습니다. 내가 그 개미고, 나는 그 장대하고 광포한 아룸다움 앞에 보잘것 없이, 납작 엎드리는 수밖에 없었습니다.
'책읽는 엄마 > 내가 읽은 책' 카테고리의 다른 글
<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> (0) | 2019.09.20 |
---|---|
<저 청소일 하는데요> (0) | 2019.09.13 |
<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> (0) | 2019.09.13 |
<아들 셋 엄마의 돈 되는 독서> (0) | 2019.03.17 |
<어쩌다 어른> 어쩌다보니 어른이 된 나에게 주는 위로 (0) | 2019.02.03 |